OECD 국가 중 주택시장이 안정된 국가로 독일이 꼽힌다. 과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국가는 부동산가격이 많이 올랐다. 당시 한국도 아파트 가격급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그러나 한국보다 주택가격이 더 많이 오른 국가도 많았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배경에도 미국에서의 주택가격의 급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세계적으로 부동산 사이클이 상승주기이던 시절에도 독일의 주택가격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금융위기 직후 상당수 국가의 주택가격이 많이 하락했지만 독일에서는 완만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20여년 전인 1990년부터 1994년까지는 독일도 주택가격이 23.5% 상승했다. 이는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면서 동서독이 국경을 개방하고 1990년 10월3일 통일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통일 결과물, 주택가격의 상승
지난 1989년 당시 동독은 독일 총인구의 21%, 국내총생산의 11%에 불과했으며 생산성은 서독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일은 서독에 비해 경제력이 아주 약한 동독으로부터 서독으로의 인구이동을 유발했다. 통일 직후 이민자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주택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주택가격이 상승하게 된 것이다.
이주민 대부분은 근로자였다. 1992년에 구 서독지역의 인구는 전년 대비 2.3% 증가한 반면 구 동독지역의 인구는 28% 줄어들었다. 1993년 말 독일 전체 주택 수는 3230만호로 전체 가구 수 3480만 가구에 비해 250만호가 적었다.
과거 서독지역에서는 유입인구가 증가하면서 절대적인 주택부족 문제가 생긴 반면 구 동독지역의 경우 낙후된 주택의 재개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또한 주택시장에서는 임대료가 빠르게 상승했다. 아울러 구 서독지역의 1993년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4.2%에 그쳤지만 임대료 상승률은 6.3%에 달했다.
수요증가로 주택가격이 상승하자 독일정부는 여러 세제지원정책 등을 통해 주택건설 투자를 촉진하면서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임대용 주택건설에 대해 감가상각을 인정하고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늘려가면서 공급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완공 건수가 1990년대 중반까지 크게 증가했다. 공급이 빠르게 이뤄지다보니 지역간 수급불일치가 나타나고 과잉투자가 유발되면서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주택가격이 심하게 하락했다.
1995∼2002년 저금리와 소득증가를 바탕으로 영국의 주택가격이 125%나 급등했으며 여러 국가에서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동안에도 독일(-5%)은 일본(-20%)과 같이 하락했다.
◆주택시장 안정되자 물가도 안정유지
동서독 통일비용 부담 구조조정으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기부진으로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가 미약해 주택구입능력도 감소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이민 및 유입인구가 정체되면서 인구증가 역시 둔화되었다. 구조적으로 주택수요가 취약해지고 정부에서 세제지원 인센티브를 철회함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조정국면이 지속됐다.
주택시장이 꾸준히 안정되면서 물가안정도 유지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9년까지의 독일 주택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1%다. 다만 서독의 대도시와 구 동독지역의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된다.
독일은 장기간 주택시장이 안정되자 집을 매입할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자가소유 주택비율이 절반도 안되는 43%에 머물렀다. 이는 유로지역 평균(62.3%)에 비해서도 많이 낮은 수준이다(2009년 ECB자료). 독일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은 민간이나 공공기업이 소유한 임대용 주택에 거주하는 셈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주택의 질이 좋고 주거보장이 잘되어 거주기간이 10년을 넘는다. 임차인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주택소유의 필요성을 줄였다. 세입자협회를 통해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며 집주인과의 분쟁 또는 하자가 발생했을 때 세입자협회 소속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독일은 영국, 프랑스 및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계약임대주택제도를 시행 중에 있는데 임대계약기간을 길게 설정하는 집주인에게는 취득·등록세, 재산세 등을 감면해주며 집수리비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시세차익이 아닌 은퇴 후 임대료 수입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주택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독일인은 대부분 주택 구입 시 잘 갖춰진 장기대출제도를 이용한다.
◆독일과 다른 한국 주택시장, 어떻게 달라질까
독일 주택시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안정세를 지속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 따라서 2000년대 후반부터 점점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은행에서는 주택구입용 대출기준을 완화했다.
자가 주택보유비율이 낮은 독일 국민들은 저금리로 대출 부담이 줄어들면서 직접 거주할 주택구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하면서 시장에 늘어난 유동성은 여타 국가보다 경기가 좋은 독일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확대시켰다.
작년 독일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4% 올랐고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초에 비해 25.2%나 상승했다. 자가거주 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이 특히 높았으며 단일가구 주택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4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가격은 작년 평균 7% 올랐으며 10대 대도시의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10%를 넘었다. 금리가 낮아지고 주택구입비용이 줄어들면서 주택 수요는 더욱 더 늘어났다. 주택부족으로 주택난이 심해지자 도시외곽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빈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대도시에서는 서민은 물론 중산층도 월세 상승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과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가구당 소득에서 주택임차료 등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뮌헨이 47%, 프랑크푸르트와 뒤셀도르프가 35%에 달하는 등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30%를 넘었다.
지난 세월동안 독일 주택시장의 사례를 통해 어떤 자산가격이 아무리 오랫동안 어떤 추세를 이어가더라도 그것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정관념이 자리 잡으면 다른 변수의 변화나 새로운 변수가 대두될 때 나타나는 영향을 간과하기 쉽다. 한국의 주택시장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